대통령 연설문 대통령 수준 대변
언론매체 및 잡지에 자주 기고를 하다 보니, 많은 지인으로부터 “어떻게 아느 것이 많냐, 언제부터 글을 쓰게 되었냐, 원래부터 소질이 있었느냐?” 등등 질문을 받으면 “과거 직장 생활하면서 업무적으로 인사말을 썼던 경험과 주변에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지인들의 영향으로 평소의 메모 습관과 호기심이 더해 주제가 떠오르면 글로 표현해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공유하는 것이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 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글과 인생의 롤모델로 시절 인연인 우리나라 최초 밀리언셀러 소설가 등과 자주 소통하고 ‘겸손하면서 늘 반성과 감사의 마음으로 지금 살아있음이 가장 큰 축복’이라는 그의 생활 철학을 긍정 마인드로 배우고 실천하고 있다.
가끔 지인들이 출간한 책을 읽고 축하의 마음을 담아 서평 겸 저자의 투영된 내면을 표현하면서 영혼의 상처를 향기로 바꾸려는 시도도 하고 있다.
일본의 노벨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되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세계적 작가로 성장한 건 마라톤이었다며, 달리기를 축으로 인생과 문학에 대해 품고 있던 생각을 글로 표현하듯, 누구나 글을 쓰고 싶다면 글을 멋지게 잘 써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자신이 쓰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 열정과 인내심을 갖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을 하길 권한다.
얼마 전 우연히 방송에서 대통령의 연설문을 쓰던 전직 연설비서관이 평소 생소하고 궁금했던 역대 대통령의 연설문이 어떻게 작성되는지 그리고 나름 분석하고 평가해 눈길을 끌었다.
대통령 연설문 쓰는 것이 어렵지 않고 글재주가 필요한 것도 아니라면서 뭘 많이 알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박식하면 오히려 독이 되고 글솜씨가 탁월하면 대통령이 아닌 자기 문체로 쓰게 되어 대통령의 글이 아닌 자기 글이 된다는 것이다.
자기가 뭘 많이 안다고 많이 아는 걸 연설문에 집어넣으면 안되고 대통령이 아는 것만, 말하고 싶은 내용만 써야 하기에 자기가 뭔가를 많이 알거나 자기가 글을 잘 쓰거나 그럴 필요는 없다고 한다. 어차피 대통령의 문체를 빌려오고 그걸 흉내 내는 거고 대통령의 생각을 담고, 생각을 읽는 능력만 있으면 된다고 한다.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론 이해가 안 된다. 글재주가 없으면 어떻게 그 자리에 붙어서 일한다는 것인가? 참으로 어려운 얘기다.
또한 읽고 듣는 능력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고, 고스트 라이터(Ghost writer), 그야말로 그림자 투명 인간으로 그분(대통령) 것을 그대로 받아서 문자화하고, 늘 그분 안에 들어가 살아야 하고, 그분의 심정이 어떻고, 그분의 생각이 어떻고, 그분의 입장이 뭐고, 그분은 지금 어떤 처지에 있고, 그분은 어떤 사정을 겪고 있는지를 완벽하게 알아야 한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모시는 분이 기본적으로 자기가 존경하고, 따르고 닮고 싶고, 본받고 싶은 분이어야 하고, 그분의 생각과 지금 심정, 그런 것들을 잘 눈치채야 한다. 거기에 맞춰서 쓰는 게 중요하다. 그러니까 자기를 내려놓고 아예 자기를 잊고 자기가 없는 상태에서 그분이 돼서 살아야 한다고 한다. 우리가 볼 땐 그래도 그게 어렵다.
보통 연설비서관실에는 역대 대통령 연설문이 전부 구비돼 있는데 수시로 봐야 된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해외 순방 계획이 있으면, 역대 대통령 누가 그곳 순방을 가셨는지, 가셔서 어떤 얘기를 했는지 이런 걸 다 찾아본다. 혹시라도 했던 말을 또 할까 봐 그리고 대통령도 모르는 가운데 표절이 될까 봐 보는 거다. 할 말은 한정돼 있고 그런 게 나오는 소스, 그러니까 외교부가 옛날 걸 베껴서 주거나 옛날 걸 짜깁기 한걸, 그걸 안 찾아보면 그냥 거기에 휘둘리고 대통령 망신시키는 거다.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역사의 기록이기 때문에 꼭 찾아본다.
연설문 자체만으로 가장 좋은 것은 노태우 대통령의 연설이 하나의 문학작품이다. 글 자체의 완성도는 가장 높다고 본다. 글의 내용을 떠나서 그 문장의 수준, 아주 유려한 문장이 노 대통령이 쓴게 아니지만, 그런 걸 잘 받아줘서 그런 걸 잘 연기하신 거다. 그런 글이 만들어지기까지 노 대통령의 공도 있다는 거다.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은 촌철살인이 있다. 연설문이 되게 투박하고 짧지만, 한 방이 있다. 당시엔 그것만 있으면 됐던 것 같다. 신문이라면 제목 같이 1면 탑 제목 걸이 그거를 만드는 감은 정말 좋으셨던 것 같다. 대개 그런 것은 김영삼 대통령 손끝에서 나왔다고 한다. 연설비서관실에서 올린 거에 사인펜으로 한마디 쫙 쓰면 그게 그다음 날 제목이 됐다고 한다.
전두환 대통령은 알다시피 “본인은…·” 하면서 되게 권위적이다. 연설문은 나쁘지는 않다. 왜 그러냐 하면 연설문 작성에 별로 관여를 안 했고 어차피 글쟁이들이 썼기 때문에 느낌은 되게 권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박정희 대통령 연설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때 뭐 누가 썼는지는 모르지만 울림이 있다. 영혼 있는 혼 있는 연설이라고 평가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야말로 실사구시다. 연설문을 비서실장도 쓰는 등 여러 사람한테 시켰는데, 그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을 취하는 그런 방식으로 연설을 했다. 이 대통령은 품격이 글에서 나오는 게 아닌데, 품격있게 쓰라고 품격을 되게 강조했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은 멀쩡하게 작성된 연설문 원고가 연설문 고치는 게 취미였다는 비선실세 최순실씨에 의해 ‘걸레’가 되어 돌아왔다고 한다. 결국은 그 국정농단 사태가 거기서 비롯된 것 아닌가? 박 대통령을 모셨던 한 인사는 책에서 “박대통령이 정치적 식견·인문학적 콘텐츠도 부족하고 신문기사를 깊이 있게 이해 못한다. 이제 말 배우는 어린아이 수준에 불과하다”고 폄하한 일화도 있다.
완벽하게 자기 글을 자기가 쓸 수 있는 분은 두 분밖에 없었다고 한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그분들은 누가 옆에서 도와주지 않아도, 도와주는 글보다 더 잘 쓸 수 있는 분들이라며, 노무현 대통령을 보면 국민들이 알고 있는 연설들이 있기 때문이다.
밑에서 올라간 글이 아니다. 온전히 오롯이 본인에서 나온 연설이다. 그런 연설과 아래에서 올라가서 만들어진 연설을 국민들은 구분하고 직접 한 연설에 감동한다. 그러니까 두 분은 누구 도움을 안 받을 때 더 좋은 걸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한다.
글이라는 게 글을 잘 쓰는 게 아니다. 그 글이 나올 수 있는 어떤 배경이 있는 거다. 마음과 진정성이 있는 거고 국민을 위하는 어떤 마음, 그런 공복(公僕)으로서의 어떤 자세, 그런 태도, 이런 게 갖춰져 있는 거다. 그런 마음가짐이 중요한 거다. 그런데 그게 없는 지도자들이 많아 거기서는 절대 그런 글이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엊그제 필자와 동명(同名)인 교수가 정년을 앞두고 “훈·포장을 받더라도 조국 대한민국 명의로 받고 싶지, 정상적으로 나라를 대표할 가치와 자격이 없는 대통령에게 받고 싶지 않다. 이 훈장 자네나 가지게!”라고 해 눈길을 끌고 있다. 더구나 대통령이 22대 국회 개원식에 불참했고, 국회 시정 연설을 며칠 앞두고 국무총리 대독 가능성이 거론되는 등 거대 야당과 대립이 더욱 심화되는 모습이다.
대통령 연설문은 대통령의 생각과 입장, 정책 방향 등을 국민에게 전달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대통령 연설문은 대통령의 의사소통 능력과 철학을 반영하며, 대통령의 국정방향과 목표를 국민에게 알리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대통령 연설문은 대통령의 개인적인 수준뿐만 아니라, 연설문 작성팀의 역할과 기여도도 크게 작용한다. 연설문 작성팀은 대통령의 의도와 메시지를 파악하고,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문장과 구조를 구성한다. 따라서 대통령 연설문은 대통령의 수준과 의사소통 능력을 대변하고 연설문 작성팀 협업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
대통령 연설문이 단순히 연설할 내용을 적은 글이 아니라, 늘 국민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고 감동을 주는 향기로운 메시지로 전달되길 소망하며,
『전두환 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 병문안에서 이희호 여사에게 “김대중 대통령이 현직에 계실 때 우리 전직들이 제일 행복했어요. 5년 재임기간 동안 청와대 10번 가까이 초대받아 가서 세상 돌아가는 상황도 상당히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에 이희호 여사는 전 전 대통령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답했다.』는 이 대화내용이 그 어느 때보다도 요즘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문화유산국민신탁 충청지방사무소 명예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