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이야기는 다시 2010년 12월 20일로 돌아간다. 검찰 조사에서 한명숙 전 총리에게 9억 원을 줬다고 진술했던 사업가 한만호는 이날 열린 공판에서 진술을 뒤집었다. 한만호가 감옥에서 작성한 비망록에 따르면 검찰이 자신을 추가 기소할 수도 있다는 공포가 컸다.
한만호는 당시 회사가 부도 났고 이미 옥살이를 하고 있었다. 형기를 마치고 나가면 재기를 해야 하는데 검찰 말 대로 하면 검찰이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본인의 진술이 언론에 생중계되다시피 보도가 되고 결과적으로 선거에 이용되는 모습에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가 비망록에 쓴 표현에 따르면 “검찰의 언론플레이는 마술사” 수준이었다. 한만호는 검찰 조사를 받을 때 돈을 한명숙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줬다는 말을 했지만 검찰이 묵살했다고 비망록에 적었다. 한만호는 결국 공판을 기다려 증인석에서 검찰 진술을 번복할 수밖에 없었다.
<한만호 비망록 52쪽>
검찰은 알고 있었다. 기자님들 들어주세요. 검찰은...다른 곳에 지원했거나 가능성을 알고 있었다. 증인이 2번 가량 ‘실탄’이란 용어 사용하며 이야기했고요... 못 알아들은 척 하였고 어렵게 이아기 했는데 핸드폰 들고 밖으로 나가서 한참만에 들어와서 오늘은 한 사장님이 피곤해하시니 그만하자, 오늘 드시고 싶은 메뉴를 말씀해달라. 회초밥을 먹었다. 무고한 총리님의 살점을 발라먹고 있다는 생각으로 복통 설사로 무척 고생했다.
한만호의 진술 번복으로 ‘한명숙 사건’ 재판은 국면이 완전히 바뀌었다. 검찰이 수세에 몰리는 상황. 검찰은 핵심 증인 한만호 진술에 기대지 않고 한명숙 전 총리에게 돈을 전달한 사실을 입증해 내야 했다. 또 한편으로는 한만호가 법정에서 증언한 내용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판사들 앞에서 증명해야 했다.
검찰은 한만호가 법정에서 위증을 했다는 혐의로 수사를 개시했다. 한만호의 감방을 압수수색해 비망록 등을 압수해갔다. 그리고 한명숙 전 총리 1심 판결이 나기도 전에 한만호를 위증 혐의로 기소한다.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검찰의 다급한 사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검찰은 또 다른 반격의 카드를 내놓는다.
◆ 다급한 검찰의 ‘반격 카드’ ①사기꾼
2011년 2월 21일 피고 한명숙 제 7차 공판. 검찰 측 증인으로 김00이 나왔다. 한만호와 함께 서울구치소에 있었던 사람이다. 1977년 생으로 당시 나이 35살. 2009년 사기로 구속됐다가 2010년 9월 출소했다. 이미 상습 사기 전과가 있었던 인물이다.
증인 김 씨가 재판정에서 한 증언의 핵심은 한만호가 한명숙에게 뇌물을 줬다는 사실을 자신에게 여러차례 이야기했고, 8.15 특사를 기대했는데 검찰이 해주질 않아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하겠다는 말을 했다는 내용이다. 쉽게 말하면 한만호가 법정에서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검찰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언이었다. 김 씨의 증언은 핵심 내용도 한만호의 증언과 달랐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한만호의 주장과 완전히 배치됐다.
증인 김 씨와 한만호는 2010년 4월 1일 서울중앙지검 구치감에서 만났다. 한만호는 통영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갑자기 서울구치소로 이감된다. 그리고 중앙지검 특수부에 소환됐다. 재소자가 검찰에 소환되면 구치소 버스를 타고 이동해 일단 검찰청 구치감이라는 곳에서 대기하게 된다. 여기서 김 씨와 한만호가 만난 것이다. 여기까지는 양 쪽 모두 똑같이 인정한 사실이다.
증인 김 씨는 구치소 수감 전부터 한만호와 경기도 일산에서 사업을 하던 중 여러차례 만난 사이로 서로 인사 정도는 하는 관계였다고 증언했다. 반면 한만호는 서로 고향을 물어보다 일산이라고 해 반가워했던만큼, 김 씨와는 구치감에서 처음 만난 사이라고 주장했다.
<한명숙 사건 공판 조서 중>
● 김00 : (수감 전인) 2006년 일산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한만호는 건설회사에 있었고 저는 부동산 관련 건설회사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오다가다 뵙고 인사하는 사이였습니다.
● 한만호 : 저는 구치감에서 김OO이라는 사람을 처음 봤고 일산 후배라고 해서 반가운 내색을 해줬을 뿐입니다.
증인 김 씨는 또 한만호가 처음 만난 구치감에서 뇌물 때문에 문제가 됐다며 본인에게 의논을 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한만호는 김 씨를 그런 이야기를 나눌 대상으로 여기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한명숙 사건 공판 조서 중>
● 김00 : 한만호가 첫날 되게 불안해했습니다. 한만호의 표현이 그랬습니다. ‘나는 뇌물 준 것이 문제가 된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라고 저에게 의논을 했습니다. 제가 ‘뇌물 처벌 받겠는데요’라고 했더니 ‘정지차금법으로 한번 둘러봐야되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알아서 하시라’고 했습니다.
● 한만호 : 뇌물이고 정치자금이고 이런 쪽의 이야기는 한 기억도 없고,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진술을 하는 것인지 저로서는 감조차도 잡을 수가 없습니다.
● 김00 : 한만호 사장님이 한명숙 총리 집에 간 내용까지 저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한만호가 저에게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다 해주었습니다.
● 한만호 : 아무리 일산 사는 후배라고 하더라도 구치소에서 처음 보는 후배에게 무슨 돈을 준 이야기, 또 돈을 가져간 집의 구조나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그것은 지나치다. 정말 지나치다. 참 너의 뇌를 진짜 쪼개 보고 싶다.
한만호는 비망록에서 처음 중앙지검 특수부에 소환될 때 무엇 때문인지 알지도 못했다고 썼다. 그런 상황에서 소환 첫날 구치감에서 만난 김 씨에게 한명숙에게 준 뇌물에 대해 털어놨다는 것 역시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한만호 비망록 21쪽>
4월 1일. 통영에서 올라온 다음 날 소환되어 부도 경위와 피해자들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제가 무슨 신분으로 조사받는 것이냐 물었다. 아무 신분도 아니고 그냥 조사하는 것이다.... 이때까지는 한 총리님 건이라 생각못했다.
한만호는 1961년 생, 2010년 당시 50살이었다. 비록 회사가 부도가 나 감옥에 갇힌 신세였지만 중견 건설업체를 운영하는 사업가였다. 증인 김 씨는 34살, 16살 어린 상습사기범에게 내밀한 뇌물 얘기를 만나자마다 털어놨다는 것 역시 다소 의아한 대목이다. 김 씨는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명숙 사건 공판 조서 중>
● 김00 : 그 안(구치소)에서 같은 옷을 입고 사회에서 조금 알면 한 끼를 먹어도 가족 같이 지냅니다. 왜냐하면 어려운 사람들끼리 비록 죄를 짓고 들어왔지만 동질감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고, 증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증인 김 씨의 증언에 따르면 한만호가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한 이유는 한명숙에게 돈을 줬다고 털어놨는데 가석방이나 특사, 사업 재기 등에 검찰이 도움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만호가 한명숙의 도움을 받을 생각으로 진술을 번복했다는 것이 김 씨의 주장이다.
<한명숙 사건 공판 조서 중>
● (한명숙 측) 변호인 : 증인은 한만호로부터 “검찰이 도움을 안 주니 (법정에서) 거짓말을 해야겠다, 진술을 번복하겠다”라는 말을 직접 들었는가요.
● 김00 : 예.
● 변호인 : 주로 한명숙이 도와줄 것이라고, 검찰보다 더 큰 기대를 했다고 하였지요. 그 근거는 뭐라고 하던가요.
● 김00 : 한명숙 총리님이 자신의 손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 변호인 : 야당 정치인이고 검찰에 의해서 기소까지 되어서 재판까지 받았고, 한만호는 불리한 진술까지 했는데도 한만호는 한명숙 총리가 자신을 계속 도와줄 것이라고 크게 기대했다는 것인가요.
● 김00 : 예.
● 변호인 : 그렇게 판단한 근거는 무엇인가요.
● 김00 : 시장 선거에서 떨어졌어도 옛날에 총리를 했었으니까요. ‘네가 봤을 때 일개 검사가 힘이 세겠느냐, 전 총리가 힘이 세겠느냐’라는 말을 했었습니다.
당시는 이명박 정부 집권 4년차였다. 아무리 전 총리라고 해도 이미 선거에서 떨어지고 뇌물 혐의로 기소까지 당한 한명숙 전 총리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거라고 한만호가 기대했다는 진술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 다급한 검찰의 ‘반격 카드’ ②약쟁이
한 달 뒤, 2011년 3월 7일 제 8차 공판에서도 또 다른 검찰 측 증인이 증인석에 섰다. 역시 한만호와 같이 서울구치소에 있던 최00. 상습 마약 사범이었다. 최 씨의 증언도 앞선 김 씨와 일맥상통했다.
한만호가 처음 만난 날부터 한명숙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고 자신에게 말했으며, 이번에는 보다 구체적으로 9억 원이라는 액수,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서운한 감정까지 말했다는 것이다. 한만호는 역시 마약사범과 그런 말을 섞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한명숙 사건 공판 조서 중>
● 검사 : 한만호가 한 총리에게 돈을 주었고, 그 액수가 9억이라는 말을 처음 만난 날 하던가요.
● 최00 : 예. 처음 만난 날 들었습니다. 얼마 지난 뒤에 언론보도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제가 진짜 사실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 검사 : 그러자 한만호가 뭐라고 하던가요.
● 최00 : 웃으시면서 “내가 준 것을 줬다고 하지 안 준 걸 줬다고 하겠습니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검사 : 증인은 한만호가 한명숙 피고인에게 서운한 감정을 토로하는 거를 들은 사실이 있는가요.
● 최00 : 제가 법정에서 말씀드리기 곤란하지만, 험한 욕을 해 가면서 자기가 돈을 줄 때는 자기 회사 잘 될 때 갖다준 것이 아니고, 참 힘든 상황에서도 어렵게 갖다줬는데 약속을 안 지켰다면서 욕을 하고, 그 다음에 표현하기가 좀 그런데, 돈만 너무 밝힌다, 이러면서 욕을 하셨습니다.
● 한만호 : 이 사람이 웃기는 사람이네. 검사님이 전에 말씀하셨죠. “마약사범들 말 믿지 마세요. 박연차 회장도 당할 뻔했답니다.” 그렇게 말씀한 적 있지 않습니까. 이런 마약사범들에게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합니까. 검사님 말씀 듣고 마약사범들과는 그냥 얘기를 듣기만 했지 누구 욕을 하나요.
검찰 측 증인 김 씨와 최 씨의 증언은 당시 언론에서도 크게 보도했다.
<“한만호, 진술번복 대가로 사업 재개” 동료수감자 증언>(MBC)
<“한만호 진술 뒤집고 사업재개 생각했다”>(연합뉴스)
<“한만호 진술 번복 이전부터 계획”VS“근거없는 얘기”>(노컷뉴스)
워낙 세간의 관심이 높은 재판이었기 때문에 증인들의 증언은 하나하나 보도되던 때였다. 한만호의 검찰 진술과 법정 증언 중 어떤 것이 진실이냐를 두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던 상황이어서 위 검찰 측 증인 두 명의 법정 증언은 한만호의 평소 언행이 석연찮았다는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 수시로 검사실 출입했던 검찰 측 증인들
검찰 측 증인 김 씨와 최 씨는 공통점이 있었다. 구치소에서 친밀한 사이였다는 점 말고도, 검찰에 수시로 불려다니는 죄수들이었다는 점이다. 취재진이 입수한 두 증인의 출정기록에 따르면 김 씨는 2010년 3월부터 2010년 8월까지 6개월 동안 89차례 검찰에 출정을 갔다.
한 달 평균 15회, 이틀에 한 번 꼴이다. 특수부, 강력부, 형사부 등 다양한 검사실에 불려다녔다. 최 씨도 마찬가지였다. 최 씨는 2010년 4월부터 2011년 3월까지 12개월 동안 148차례. 한달 평균 12회다. 직장인이 출근하듯 검찰청에 출정을 다녔다.
구치소에는 속칭 검찰의 ‘빨대’, ‘프락치’ 역할을 하는 죄수들이 있다. 검찰에 죄수들의 동향이나 범죄 첩보 등을 보고하고 편의를 제공 받거나, 자신들에 대한 구형량, 가석방 등을 거래하려는 자들이다. 검찰은 이런 죄수들을 수사에 적극 ‘활용’한다.
한만호의 변호인이었던 최강욱 변호사는 “사기전과자, 마약사범 등이 검찰에 가서 검사하고 딜을 많이 한다. 내가 뭐를 얘기해 줄 테니까 구형을 줄여달라, 이런 거”라며, 당시 한만호는 이들이 검찰과 거래하는 소재로 활용된 것이라 여겼다고 말했다. “자기(한만호)가 나중에 결국 그런 딜의 소재로 활용이 된 거잖아요. 그러니까 더 충격을 받았죠.” 최강욱 변호사가 전한 한만호의 당시 심경이다.
◆ 판결문에 숨어있던 ‘죄수H’의 존재
‘수상한’ 검찰 측 증인 김 씨와 최 씨의 공통점은 하나가 더 있었다. 두 증인의 증언이 의심스러웠던 한명숙 측 변호인은 한만호의 평소 언행을 들은 사람이 더 있냐고 반복적으로 질문했다. 이에 대해 김 씨와 최 씨는 공통적으로 대답한다. ‘죄수H’가 있었다고.
<한명숙 사건 공판 조서 중>
● (한명숙 측)변호인 : (한명숙 뇌물 사건을 한만호에게) 이런 엄청난 이야기를 딱 듣고 증인은 누구에게 이야기하였나요.
● 김00 : H입니다.
● 변호인 : 한만호, H, 증인 세 사람이 같이 한만호의 사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가요.
● 김00 : 예.
● 변호인 : 구치소에서 H 외에 다른 사람에게도 “한만호 법원에서 거짓말 하는 것이다” 이런 말한 적이 없나요.
● 최00 : 없습니다.
● 변호인 : 한명숙 재판 이후에 H와 김00, 셋이 만난 적도 있는가요.
● 최00 : 예. 있습니다.
● 변호인 : 검사실에서 만난 것인가요.
● 최00 : 예.
더구나 증인 최 씨는 죄수H가 본인들보다 한만호와 더 가까웠으며, 한만호가 진술 번복에 대해서도 죄수H와 내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한명숙 사건 공판 조서 중>
● (한명숙 측)변호인 : 한만호, H 등과 구치감에서 다시 만난 사실이 있나요.
● 최00 : 만났습니다.
● 변호인 : 그때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나요.
● 최00 : 저는 H와 별 얘기를 나눈 것이 없고 H와 한만호가 둘이 붙어서 얘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 변호인 : 한만호, H, 증인 김 씨, 증인 최 씨 중에서 주로 한만호와 이야기한 것은 김 씨인가요?
● 최00 : 처음에는 김00이 많이 했고, 나중에 법원에서 진술을 뒤집겠다는 구체적인 얘기는 모두 H와 했습니다. 한만호가 자신의 결심 같은 구체적인 얘기는 H와 했습니다.
● 변호인 : 한만호와 H가 구체적으로 진술 번복에 관해 계획도 짜고 했는가요.
● 최00 : 그날은 그런 얘기만 했습니다. 두 분 사이에 어느 정도 얘기가 되고 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건 정작 죄수H가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검찰은 한만호의 진술 번복 계획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죄수H를 왜 증인석에 세우지 않았을까. 여러가지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우리는 죄수H를 찾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는 죄수H의 이름과 경제사범으로 꽤 긴 형을 선고 받아 복역 중이었다는 사실뿐이었다. 지금도 감옥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가설을 세우고 추적했다. 운 좋게도 죄수H가 광주교도소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 ‘죄수H’의 답장: “검찰은 썩은 집단”
취재진은 죄수H에게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렸다. 긴 시간이 흐르고 취재를 포기할 무렵 답장이 왔다. 편지는 이렇게 시작했다. “심인보 김경래 기자님... 여기서 보는 검찰은 참으로 썩은 집단입니다.”
여러차례 편지가 오간 뒤 죄수H는 면회를 허락했다. 우리는 광주교도소로 향했다. (5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