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주의 『하와이 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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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주의 『하와이 펭귄』
  • 김철홍 자유기고가
  • 승인 2024.11.1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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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한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의 존재와 삶에 대한 성찰
김철홍 자유기고가<br>
김철홍 자유기고가

엊그제 시절인연 아내인 김혜주 작가의 친필 사인 책 선물을 받았다. 더욱이 책 ‘하와이 펭귄’이 첫 소설집으로 의미를 더해 모루 김홍신 작가, 도올 김용옥 교수, 기획예산처 장관을 지낸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 등으로부터 친필 사인 책을 선물로 받은 것 이상의 기쁨이었다.

김혜주 작가의 사인이 든 책 선물
김혜주 작가의 사인이 든 책 선물

김 작가가 “소설이 아니었으면, 적당히 타협하고 편리하게 잊고 지낸 시간을 기억 속에서 불러냈을까 생각이 든다. 그리고 쓰고 싶은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오를 때마다 차분히 눈을 감는다. 어둠 속에서도 빛을 볼 수 있는 희한한 상상이 펼쳐질 때까지 기다린다.”고 소설 집필에 따른 고뇌와 소회를 함축해서 밝힌 데 전적으로 공감한다.

책이 일곱 편의 소설로 구성되어 있고 표제작 ‘하와이 펭귄’이 읽기 전에는 ‘하와이 펭귄’의 무대가 혹시 해외일까? 하와이는 고지대를 제외하면 전지역이 열대기후에 속하고 펭귄은 남극 얼음의 세계에서 살아가는데, 아니다 싶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호기심과 궁금증이 더해 세 번째 소설 ‘하와이 펭귄’부터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서두에 궁금증이 풀리면서 “까만 비닐봉지가 한겨울 바람에 오그라들었다 부풀었다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부르르 몸을 떨며 파닥거렸다”며 몸짓으로 등장하는데 봉지 속엔 바로 순대가 들어 있었다. 그 순대 이미지는 나중 사슴사육 농장의 사슴피와 녹용을 연상시킨 듯하다.

주인공 형수는 누굴 챙길 형편이 아니면서 오지랖을 부리며 살다 번번이 쫓겨, 평생 떠돌이로 검은 곰팡이 가득한 천장에 삐걱거리는 침대의 하와이 모텔에 투숙하여 한 사내의 일자리 소개로 폐업한 동물원에서 부패한 작은 동물들의 사체를 담은 검은 봉지 등에서 코를 찌르는 악취를 맡으며 수레에 그런 폐기물을 옮기면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생명 경시의 현장을 그린다.

또한 그는 동물원 작업 중 부시럭 소리가 나고 검은 비닐 봉지 속에서 움직임이 느껴지는 검은 봉지를 몰래 하와이 모텔로 가져와 펴보니, 축 늘어졌지만 살아 있는 펭귄이었다.

당초 하와이 모텔 유리창에 냉풍을 막기 위해 덕지덕지 붙은 검은 봉지가 바깥 현실을 차단하려는 화자의 심리를 보여 주었는데, 그는 창의 검은 봉지를 모두 뜯어내 찬 바람을 불러들이고 꽉 막힌 모텔 방을 바깥으로 개방한다. 이는 현실이 끼치는 냉기에 대한 방어 기제를 풀고 똑바로 아픔을 노려 보려는 화자의 강한 의지를 내보인다.

김혜주 작가의 하와이 펭귄
김혜주 작가의 하와이 펭귄

여기서 펭귄은 과거 소아중환자실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모두가 잠든 밤에 그의 부부가 도망치고 남겨진 자식의 주검과 오버랩된다.

그는 또 펭귄을 껴안고 추운 냉장고 안으로 틈입하여 냉장고는 세상을 차단하고 펭귄과의 소통 심리를 드러내 펭귄이 그의 가슴 속에 남은 어린 자식과의 소통이자 죄업 내지는 죄의식의 거울이다.

이처럼 작가는 정글 같은 일상과 천민자본주의의 차가운 얼굴을 예리한 상징과 알레고리로 형상화하고 있다. 칙칙하고 음울한 색감과 자조적 터치가 이룬 황폐한 스케치는 소설 전체에서 ‘피’와 ‘검은 봉지’의 오브제를 눈여겨보게 한다.

검은 봉지는 서사 중심에 다다랐을 때 동물원에 펼쳐질 피의 복선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애써 현실을 회피하며 바깥세상으로 떠돌았던 주인공에게 작가는 제자리로 돌아갈 기회를 마련해주고 있다. 상처와 그 상처를 보듬고 살아가야 하는 삶의 방식에 대해 그리고 어쩌면 모르고 지나쳐 왔을지 모르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존재들에게 삶에 대한 성찰을 무덤덤한 투로 들려준다.

이 단편집의 매력은 김선주 평론가가 지적한 대로 붕괴와 재난의 이미지는 우리 사회의 미덕과 선한 영향력이 계속해서 약화 되어 가고 있다는 현실 의식을 내보인다. 세계 혹은 사회의 붕괴를, 가족이나 공동체의 전통적 가치 균열을, 생존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선한 사람들의 공간에 독자를 데려다 놓고는 화자의 삶과 상처에 관해 털어놓는다.

이러한 서사는 각각의 독특한 상황과 인물들에 녹아들어 독자들에게 스며든다. 무엇보다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우리의 심성 저편을 가로지른다.

이 소설은 이 시대 삶의 그늘을 투영하는 그림과도 같다. 선진국 반열에 진입한 뒤에 누리는 번영의 그늘, 칙칙한 뒷골목 사람들의 슬픈 삶을 리얼리티 강한 문체로 형상화하고 있다. 공간과 제재와 등장인물은 다양하나 주제는 결국 하나로 상통한다. 외화(外華)로 가득한 대도시의 삶에서 도태되어 가는 주변인들에 대한 연민을 담아냈다. 전편을 통해 흐르는 그런 작가정신은 독자에게 위안과도 같은 감동을 안겨 준다.

김홍신 작가는 “문학이란 영혼의 상처를 향기로 바꾸는 아름다운 행위입니다”라며, “마음에 상처가 났을 때 얼른 진물을 뿜어내면 그와 동시에 향기가 날 거라고 믿습니다. 마음에서 진물을 내뿜는 것은 고난과 시련을 흘려보내는 것입니다.”라고 망설이지 않고 답한다.

또한 살면서 영혼의 상처를 향기로 바꿀 수 있는 건 감동이라 생각하는데, 김혜주 작가는 늘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어 영혼의 상처를 향기로 바꾸는 사람이길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날마다 하늘만큼 환희 웃으소서.
(문화유산국민신탁 충청지방사무소 명예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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