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일제가 한국 전통문화를 억압하고 식민지 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결혼식 하객들에게 일본식 노동복인 몸뻬 착용을 강요한 일이나 1950년대에는 군사정권에서도 볼 수 없었던 무려 결혼식장에서의 국기 배례는 정말 아이러니하다.
핵가족화가 본격화된 2010년대 이전만 해도 우리들은 흔히 동네나 이웃에서 혼인 전날, 신랑 친구 중 함을 진 함진아비가 마른오징어 가면을 쓰고 “함 사세요”라고 외치며 밤길을 돌아다니는 장면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다가 신부집에서 짐짓 실랑이를 벌이며 몇 차례 거부하다 들어가는 모습이 일상적이었고, 함을 받은 신부집에선 함을 열어 폐백을 확인한 후 함진아비 일행들을 후하게 대접하곤 했다.
이때 함진아비는 첫째를 아들로 낳은 사람, 아들을 많이 낳은 사람 등의 기준으로 함진아비를 골라 보내기도 했다.
이뿐 아니라 결혼 후 신부집에서는 신랑 다루기로 신랑 발바닥 때리기 등으로 짐짓 괴롭히며, 신부 노래 시키기는 물론 신부 측으로부터 주안상을 대접받는 풍습이 있었다. 천만 관객영화로 알려진 ‘국제시장’에서도 1970년대로 묘사된 결혼식에서 발바닥 때리기, 신부 노래 시키기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정말 요즘 MZ세대에겐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옛날이야기에 불과하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남성 초혼 연령이 36.9세, 여성 33.9세로 남성이 2.9세 연상이라는 것이다. 또한 30년 전에 비해 혼인 인구는 50%가 줄고 외국인과의 혼인은 200%나 늘어 글로벌화가 되고 있다.
몇일 전 일요일엔 아들이 요즘 대세라는 주례 없는 결혼식을 치렀다. 신랑 아버지로 양가를 대표해 축사도 했다. 평소 주변 지인들이 주례 없는 결혼식장을 많이 다니지만, 대부분 감동 없이 틀에 박힌 축사를 듣게 된다는 얘길 종종 들었기에 글 쓰는 사람이라도 괜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지금 밝히지만, 시절인연인 우리나라 최초의 밀리언셀러 작가 김홍신 선생에게 덕담을 부탁하기도 했다.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는 아들이 결혼을 앞두고 예식 일주일 전에는 축사 대본을 보내달라는 주문이었는데, 예식 당일 하객들을 위해 스크린 자막으로 표시되기도 하는 게 요즘 트렌드인가보다.
이번 축사를 준비하면서 별 개념이 없었던 주례 없는 결혼식에 대해 이해도를 높이는 계기도 됐다. 주례사가 하객이나 예비부부에게 유익한 내용이긴 하지만 솔직히 뻔하고 지루하기도 해서 ‘지루하다’는 인식이 많은 반면, 주례 없는 결혼식의 덕담이나 축사는 신랑, 신부를 가장 잘 아는 양가 부모 중에서 하기에 가족애가 더욱 강조되고 내용도 단순히 교훈적이기보다 양가 부모님에게 감사 인사와 감동적인 내용이 들어간다.
오죽하면 주례 없는 결혼식 덕담, 축사 대필 전문업체가 성업이고, 어떤 이는 자식 결혼 준비 차원에서 나중에 벤치마킹하기 위해 지인들의 축사를 열심히 모으고 있다.
한 ‘결혼 관련 설문조사’에서 미혼자의 70%이상이 ‘주례 없는 결혼식’을 선호했으며, 미혼자 중 결혼식에서 ‘혼주 인사’가 가장 많은 응답을 차지했고, 그다음으로 ‘본인의 인사’, ‘친구의 축사’, ‘주례의 축사’ 순으로 나타났다.
기혼자 중 주례 있는 결혼식을 했거나, 미혼자 중 주례 없는 결혼식을 선택한 응답자도 주례 없는 결혼식을 원하는 주된 이유로 ‘주례사는 70% 이상이 꼭 필요한 절차가 아니다’가 가장 많은 응답을 차지했고 그다음으로 ‘주례로 모시고 싶은 분이 없다’, ‘하객들이 주례 없는 결혼식을 선호한다’, ‘주례로 모시고 싶은 분은 있으나 사례(접대)가 부담스럽다’ 순으로 나타났다. 하객 역시 70% 이상이 결혼식에 주례 없는 결혼식을 좋아한다고 한다.
신부집부터 신랑집까지 2번 결혼식을 하는 북한도 신랑집 결혼식에서 장광설(長廣舌)을 늘어놓으면 눈치 없는 사람으로 찍히는 것은 우리와 마찬가지인 듯하다. 격식을 차린 주례사 외에 축사가 따로 있고 축사를 40분 이상 하였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와 축사는 자유로이 하되 3분이 한도라며, 말은 짧은 것이 좋다는 조총련 기관지의 보도도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자녀를 결혼시킨 부모들이 하는 얘기가 있다. 과거엔 결혼식 날짜, 장소를 비롯해 모든 준비를 양가 부모들이 의논해서 해왔지만, 요즘은 자녀들이 모든 걸 결정해서 하는 만큼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저 뒷전에서 보고만 있을 뿐이다.
2020년 코로나19 팬더믹 여파 때문이고 온라인 결혼식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후 거리두기 조치와 혼인 인구 감소 등으로 예식장이 경영에 직격탄을 맞아 예식장이 줄폐업한 가운데, 일상 회복이 되자 그동안 미뤄왔던 결혼 수요가 급증하자 예식장 예약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비 신랑·신부는 부모를 대신해 원하는 날짜에 예식을 올리기란 불가능에 가깝지만 부지런히 발품을 팔고 인터넷 예약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종전엔 상견례 후 좋다는 날을 정하는 등 충분한 기간을 두고 준비하고 비교적 전통 혼례 절차대로 진행하던 것이, 이젠 상견례 후 웨딩 플래너를 통해 예식장 예약부터 모든 걸 준비하고 진행하는 문화로 바뀌는 추세다.
별도로 기획된 주례 없는 결혼식은 신랑·신부 중심이면서 가족애를 극대화하는 애틋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쉽고 형식적이지 않으니 기억에 남기도 좋은 반면, 주례 있는 결혼식은 촌스럽다거나 꼰대 이미지로 치부되기도 하고 하객도 결혼식 순서를 이미 알고 있다 보니 집중도가 낮아 신랑·신부 입장까지만 보고 식사하러 가는 일이 흔하다.
최근 재벌총수 자녀 결혼식에 주례 없이 신랑·신부가 결혼을 기념하는 각자의 메시지를 전하는 순서 등으로 약 3시간 동안 진행됐고 신부대기실에는 신부의 반려견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는 보도가 주례 없는 결혼식이 대세임을 보여 주는 한 사례이기도 하다.
폐백 문화도 점차 사라지면서 그 시간에 환복한 신부와 신랑은 혼주와 함께 피로연장을 돌면서 하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이 때 하객은 축하 멘트는 물론 주인공들과 자연스럽게 대면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어서 의미도 있고 반응이 아주 좋다고 한다.
요즘 젊은 세대는 획일적이 않은 자연스런 스몰웨딩을 선호하고 나만의 축제를 꿈꾼다. 화려하고 웅장한 결혼식 대신 가족과 친한 친구들만 초대해서 간소한 결혼식을 하고 싶은데, 대부분 큰 예식장이고 적당한 장소 찾기가 쉽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가 그동안 뿌린 축의금 본전 생각과 자존심 때문에 펜션이나 레스토랑은 격에 맞지 않으니, 간소하게 치르고 순수한 축복과는 거리가 멀다.
결혼식은 두 사람의 사랑과 약속을 축하하는 소중한 자리다. 결혼식의 규모는 중요하지 않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의 행복과 사랑이기에 스몰웨딩은 간소하고 오붓한 분위기에서 결혼식을 진행할 수 있고 잡중할 수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가족과 친한 친구들만이 참석하여 더욱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할 수 있다. 축의금 또한 부부에게 축하와 응원의 의미를 담고 있어 그 금액은 중요하지 않다.
부모도 이러한 결혼식 문화의 변화를 이해하고, 부부의 행복을 위해 축의금과 하객 숫자에 대한 생각을 좀더 유연하게 가질 필요가 있다. 필자 또한 이번 기회에 자기성찰의 계기로 삼고자 한다.
끝으로 이번 혼사에 애비가 신경쓰지 않도록 세심하게 준비하고 생각해 준 아들과 며느리에게 지면을 통해서 고마운 마음과 사랑을 전하고, 행복하고 단단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인색 2막 여정에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문화유산국민신탁 충청지방사무소 명예관장)